티스토리 툴바


다양성을 추구할 권리는 생명의 기본원리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란 이러한 생리작용을 억제하는 발상에서 부터 시작되었고 머무르고 있다.

절제를 잃어버린(통섭이라는 학술적 이론이 문화적 자연 생산물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말도 안되는 현상) 무분별한 다원주의가(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결코 다원주의 안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판을 쳐도 이를 의식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도 않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역 정치,사회,문화적 차이점들을 어떠한 방법론으로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행위는 이제, 차이점이 들어난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작업으로 이행되어져야 한다. 


착각하지 말자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사회와 문화가 소통한다는 증거가 절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Loading



인터뷰어 :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인터뷰이 :  ...씨발 어딘가는 있겠죠.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Loading



만들어진 공짜가 아닌 원래 공짜에 의해 세상은 바뀐다. 

정치는 언제나 그러한 것들에 움찔하기 때문이다. 

선거권이라는 만들어진 1+(1공짜잔치)가 아닌 정치,사회적  )잉여공간( 에게서 영감을 얻을 때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제목 : 선거하는 사람들.

                  제작 : 2012년 4월 / 이미지캡쳐

                  작가 : 선거안한 무위도식 정흥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Loading

호기심과 열정이 멈출 때 인간은 선택과 종교행위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새로 개업하는 호떡집 간판으로 현재 쓸 수 없는 것들 : 맥도날드, 스타벅스, 유니끌로, 나이키, 이마트, 구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Loading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예술을 가르쳐준 최초의 스승은 어린시절의 아빠와 앞마당의 사루비아인 것 같다.

대여섯살 쯤 되었을 때의 기억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작은 화단과 앞마당이 있는 1층주택에 살았다. 화창한 날이면 앞마다의 화단에 있던 사루비아가 늘 어린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의 휴일 아빠는 사루비아를 보고 있는 나에게 꽃잎을 따서 빨아먹는 법을 알려주셨다. 자극적인 맛은 아니였지만 달콤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그 후로는 사루비아가 눈에 띌때마다 따먹었다.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사루비아가 있는 화단의 모습이 언제나 우리집 앞마당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사루비아 꽃은 내 마음 속에 더 활짝피어가고 있음을 또한 알게 되었다.

예술은 긍극적으로 세계의 보존과 기록의 차원이기 보다는 세계의 파괴를 통한 체득과 개인적이며 사적인 표현의 영역이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 진지하게 느끼는 나에게 사루비아와 아빠는 내게 최초이며 최고의 예술선생님이다.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