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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평론

작가평론_Gérard Denizeau


정흥섭의 작품들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며 이 다양한 작품들은 특별히 선택된 상징들의 미로를 그리고 있다. 그가 선택한 상징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인간의 본성, 밝은, 어두운, 힘찬 또는 힘없는, 역동적이면서도 소리 없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다루고 있다.  사람은 사람이 속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또 그 세계를 정해진 틀 안에 재현하기 위해 구분을 짓고 구분을 짓는 원리를 만든다. 정흥섭은 작품을 다루는 과정에서 한 가지 경이로운 결합을 이루는데 그것은 바로, 지극히 물리적인 재료와 격한 표현 수단이 형태와 만날 때, 무질서한 외양을 통해 구분 짓기의 원리를 거부하는 듯한 형태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Malraux 가 예술을 일컬어 « anti-destin » (반 운명) 이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아슬아슬한 운명의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었고, 동시에 이 부조리와 이에 따른 고뇌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이 2008년이라는 시대가 무질서에 처해 있다면 나는 정흥섭이 이 시대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Malraux의 « anti-destin » (반 운명) 이라는 표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지함을 보여 준다. 감각 세계와의 단절을 거부하면서도 눈으로 보는 것 만큼이나 그것들의 기억력에 호소하는 작품들... 그 색채들의 부조화와 덩어리들의 대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원시의 마그마, 즉 생명의 자취로 남아 있는 고대의 대혼란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흥섭의 작품 속에서는 색깔이 표현하는 특정 의미들이 없어지고 색깔이 내포하고 있던 의미들이 밖으로 빠져 나와 보여진다. 다시 말해, 빛에 의해 드러난 사물보다 사물을 관통하는 빛 자체의 성질을 더 재현하기 원하는 정흥섭의 새로운 기획은 어둠을 상징하는 검은색(빛의 부재)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 검은색을 자연스럽게 흑백의 색조 원리로부터 빠져 나오게 한 것이다. 이것은 빛의 밝기를 측정하는 것 보다는 빛이 움직이는 속도를 파악하기 원하는 의도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정흥섭의 모든 작품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경계도 거대한 몸체를 한계 지을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형상이 기꺼이 이 거대한 몸체의 한 조각으로 보이도록 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공간의 인식으로부터, 기억력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마치 아주 달콤한 공상의 서막과도 같은 작가의 프로젝트는 기억의 원칙들과 특이한 방식으로 부딪힌다. 그의 프로젝트는 우리를 연극 무대 위로 올린다. 그리고 이 극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비어 있는 어둠의 공간 속의 하얀 빛과 같이, 실재가 허상 속에서 동요한다. 또는 반대로, 실재 속에서 허상이 동요하거나 동시에 이 두 개념이 서로서로 부딪힌다고 말 할 수 있다. 


공간은 늘 무언가를 품고 있다. 시간을 초월해서도 존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 속에서도 존재한다. 공간의 이 세가지 특성, 내재성, 초시간성, 탈현실성은 정흥섭의 작품 세계에서 세 가지 형태의 현실도피로 나타난다. 이 현실 도피는 비물질계 에서만 가능한 어떤 논리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며 이 현실 도피는 실재와 가상의 대립이다. 이렇게 작가는 공간의 세가지 특성을 고유한 형태들로 표현하고 있고, 이 세가지 특성은 또한 여러가지 시각적인 유사성들을 조작한다.  



Gérard Denizeau   예술평론가/파리 소르본대학 예술사 교수
번역 송태미





Heung-Sup Jung

 

Diverses au point d’en être parfois déroutantes, les oeuvres de Heung-Sup Jung tracent un labyrinthe de symboles inspirés développant le thème immémorial de la nature humaine lumineuse, ténébreuse, féconde ou assoupie, turbulente mais silencieuse. La conjonction est heureuse, dans cette genèse, entre le support matériologique, la palette incandestante et, surtout, la forme qui semble, dans son apparent désordre, refuser le principe de la compartimentation pour appréhenderl’univers et en maîtriser formellement la restitution. Si l’heure est au désarroi en cette belle année 2008, c’est sans complaisance que l’artiste en rend compte, avec une vigueur qui donne toute sa légitimité au mot de Malraux proposant l’art comme un « anti-destin », expression de la détresse face à l’absurdité de notre destinée fragile, mais aussi véhémente protestation contre cette détresse et cette absurdité. Par leur refus de rompre avec le monde sensible, par leur appel à la mémoire autant qu’à l’oeil, les dissonances chromatiques et les affrontements de masses renvoient, chez Heung-Sup Jung, au magma primitif, à cette turbulence première qui reste la marque même de la vie.
 

De ce point, la prégnance de la couleur ressortit chez lui au manifeste. Comme si le noir était écarté sans ménagement de la palette chromatique pour cause d’incompatibilité avec l’entreprise neuve qui entend bien moins restituer les objets révélés par la lumière que la nature particulière de cette lumière traversant les objets. La lumen contre la lux, en quelque sorte. Dans toutes les oeuvres de Heung-Sup Jung, il est loisible de relever que la figure apparaît volontiers comme un fragment de l’immense, aucune frontière n’étant susceptible de la réduire. Affranchi de la perception spatiale et des pesanteurs de la mémoire, prélude aux plus délectables rêveries, ce rigoureux système inventif entre en conflit singulier avec les préceptes de la mémoire. C’est au théâtre que nous sommes ; où le réel bascule dans l’illusoire, comme la lumière blanche dans la vacuité noire. Ou inversement, voire réciproquement.
 

Immanence, atemporalité et déréalisation de l’espace se présentent ainsi comme les trois formants d’un évitement du factuel au profit d’un axiome de l’immatériel, dont seul l’affrontement du réel et du rêvé, signifiés par des formes essentielles, pourraient opérer l’analogie visuelle.

 
 

Gérard Deniz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