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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 평론

전시서문_정흥섭개인전 디지털화석/Digital Fossil_백곤




디지털 가상세계의 이미지, '디지털 화석 Digital Fossil'




 

스퀘어 에닉스 재팬(주)이 제작한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세계는 가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그 세계 속으로 많은 게이머들은 자신의 정신을 집중하여 몰입해 들어간다. 물론 게임의 세계는 순수한 가상(Virtual)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어떠한 실체도 무게감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게임의 세계를 기억한다. 캐릭터와 몬스터, 환상적인 배경, 그리고 가상세계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떠올린다. 그리고선 현실의 세계에서 『파이널 판타지』의 가상세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한다. 게이머들은 게임 속의 아이템과 능력치를 습득하고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한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분명 게임 속 가상의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데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실재한다. 실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각에 의해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이러니이다. 가상이 실재하고 인간은 그 속에서 살아간다. 형이상학의 세계인 가상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인데, 현실의 공간에서 실재한다. 이 의문은 어쩌면 디지털 테크놀로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궁금증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가상의 공간을 넘나든다. 영화 『아바타 Avatar』를 통해 3D 입체영상의 현실을 이미 경험하였다. HMD를 쓰면 입체영상의 세계 속으로 언제든지 빠져들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사실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 글은 디지털 가상공간의 세계에 대한 문제제기도 아니고, 실재와 가상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의 글도 아니다. 이 글은 작가 정흥섭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해석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 엮음이다. 또한 정흥섭의 작품을 에둘러 포장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가상의 공간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존재한다. 그럼 질문을 하나 해보자. '그 세계를 만질 수 있는가?' 당연 만질 수 없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촉각적 느낌까지 전달하는 기계들이 발명되고 있다. 하지만 그 촉각이 인간의 손 지각을 고스란히 전달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가상의 개념을 관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들을 계속 진행시켜보자. 가상의 세계는 인간의 눈을 확장시킨다. 맥루한의 예견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 할 필요도 없이 디지털 환경은 눈의 세계임이 분명하다. 맹인들은 디지털 가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지각할 수도 없으며, 체험할 수도 없다. 그것은 경험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흥섭은 바로 이러한 가상공간에서의 이미지에 대해 연구한다. 그의 전반적인 작업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은 다른 글쓴이의 글을 참조하고 여기서는 그의 작품 <디지털 화석 Digital Fossil>에 대해서만 집중해보자. <디지털 화석>의 주 이미지는 게임 <파이널 판타지>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입은 옷의 단추이다. 정흥섭이 이 가상의 단추를 실재화하기 위해 제안한 방식은 단순히 종이에 출력하는 것이다. 우선 단추를 비스듬하게 공중에 띄워 얇게 가로 층의 단면으로 구분한다. 그런 다음 단추를 층층이 자른다. 잘려진 단추이미지를 종이에 인쇄한다. 물론 이 작업은 명령만 하면 컴퓨터가 다 알아서 한다. 출력된 종이를 쌓아올리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추가 완성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추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입체 단추를 제작하면 될 것이지 왜 구지 어렵게 단추를 층층으로 구분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정흥섭은 애초부터 촉각적인 형상을 만드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화석의 단면처럼 지층이 쌓여 퇴적된 단추이미지를 형상화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여기서 형상화란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인식속에서 입체화되는 가상의 형상화인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가상 이미지는 손이 아닌 단지 지각체계의 감각만으로 형상화되는 이미지인 것이다. 정흥섭의 『디지털 화석』이 내놓은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가능한데 첫째, 디지털 이미지가 인쇄의 형태로 종이에 출력 된다는 것이다. 둘째, 컴퓨터의 철저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된다는 점이며, 셋째, 디지털 이미지가 종이에 출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인식 속에서 이미지화 된다는 점이다. 정흥섭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디지털 가상 단추

가상(Virtual)('가상(virtual)'이라는 단어는 중세 라틴어 virtualis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는 힘, 능력이라는 뜻의 virt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란 무엇인가? 스콜라 철학에서는 가상을 '실행 상태가 아니라 잠재된 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잠재성은 마치 나무가 씨앗 안에 가상적으로 존재하듯이 아직은 현실화 되지는 않았지만 어떠한 계기를 통해 시공 속에서 현실화(Actualization)될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환경에서의 가상은 어떠한 의미인가? 테크놀로지 용어로서의 가상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전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에 가상성은 「마치-처럼 As-If」이라는 성질을 통해 실질적인 실재성(Pragnatic Reality)을 가져다 준다.(마이클 하임, 여명숙 역,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책세상, 1997, pp. 221 참조.) 정흥섭의 출력된 단추이미지는 어떠한가? 단추를 현실화 될 수 있는 잠재적 이미지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전자적으로 존재하는 환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단추는 종이에 분명히 출력되었고 현실에서 실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단추이미지는 여전히 가상적이다. 왜냐하면 종이라는 평면에서의 이미지는 그것 자체로 환영이며 허상이기 때문이다. 정흥섭은 전자적 이미지를 실재적인 이미지로 가져오는 것이 큰 의미가 없거나, 혹은 전자적 이미지가 번역 (매체의 변환이라고 할 수 있는)의 과정을 거쳐 현실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가상의 이미지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고대 플라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플라톤은 가상의 개념을 존재와 존재론적 거리로 파악하였다. 그는 가상을 진리에 비한 속임수, 허구, 환영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인식론적 의미로 규정하였는데, 가상을 완전한 없음이 아니라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파악하였다. 즉, 플라톤은 실재와 그림자(가상)와의 관계를 존재와 무(無)의 관계가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의 관계라 생각하였다.(플라톤, 최현 역, 『플라톤의 국가론』, 집문당, 1999, p. 406.) 그러므로 가상이라는 것은 '실재로 없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며, 그러한 것은 '있는 것'이 된다. 정흥섭의 단추이미지는 실재로 종이에 출력되어 있으나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한다. 여기서 잠깐 '화석(Fossil)'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석'은 말 그대로 퇴적물과 함께 퇴적된 형태나 흔적을 일컫는다. 정흥섭의 단추는 지층 속에 숨겨져 있는 화석이다. 물론 그것은 전자적이며 가상적인 화석이다. 가상적인 화석이 종이에 출력되어 층을 이루며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하였듯이 그는 화석을 지층에서 빼내어 조형화하지 않고 단추가 들어있는 지층 자체를 고스란히 쌓아올린다. 집적된 종이더미 속에는 분명 단추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인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화석은 이 지구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땅 속 깊숙한 어딘가에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정흥섭의 단추화석은 종이지층 속에서 누군가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로 향하는 문

미디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미디어는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일컫는다. 즉, 글자, 그림, 음악 등 인간이 전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정흥섭은 종이미디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종이에 단추를 출력한다는 것은 종이라는 매체적 성격으로 단추이미지를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그는 종이위에 층층이 쌓여있는 단추단면 이미지를 엮어 책으로 만든다. 바로 책이라는 형태의 화석 층을 만들어 내고 게임 속 가상의 단추이미지의 실재를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가상의 형태와 의미 그대로 말이다. 이쯤 되면 정흥섭이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가상공간과 가상이미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화석』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한 세 가지 분석틀 중 두 번째 질문의 답을 구하지 못했다. 바로 오류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그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오류의 지점을 살펴보자. 단추를 인간이 층층이 자른다고 했을 때 일정한 밀도와 질량을 가진 단추는 단면단면 오류 없이 잘리게 된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램 내에서 단추를 절단할 때 인간이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프로그램상의 오류가 발생한다.(가상공간에서 3차원의 입체를 가능하게 하는 3DSMAX 프로그램에는 두 개 이상의 3DS 조형물들을 겹친 후에 겹쳐진 부분의 조형만을 남기는 기능키(Boolean/intersectic)가 있다. 이러한 기능키로 만들어낸 3차원 단층조형물의 랜더링 이미지들 중 몇 개의 이미지들은 자체적으로 오류(bug)가 발생한다.) 이 오류이미지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지 않기에 버려진다. 정흥섭은 바로 이 버려지는 오류이미지들의 행보에 관심이 있다. 인간의 인식 바깥 알 수 없는 가상공간에 버려지는 가상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이 쌓여 지층을 이루고 화석화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가상의 공간속에 존재하는 '디지털 화석'은 인간의 인식들을 벗어나 디지털 세계 속에 안착된다. 이 오류의 이미지들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인간의 시지각을 위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미지들, 그리고 그 이미지 너머에 있는 알 수 없는 가상의 오류이미지들은 다른 언어체계로 엄연히 존재하며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가상의 세계를 만질 수 있는가? 가상은 인간의 시지각에 의한 감각의 차원에서만 만질 수 있는 세계이다. 정흥섭의 『디지털 화석』은 가상을 허상 혹은 현실의 잠재태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가상을 가상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그렇기에 그는 가상공간속의 이미지를 재현하여 번역하지 않으며, 가상의 이미지 그 상태 그대로를 실재하게 만든다. 디지털이미지는 인간의 인식 속에서 이미지화 된다. 그 이미지가 종이에 인쇄되거나 현실의 사물로 제작되었다고 했을 때 디지털 이미지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가? 그것은 현실세계의 물질성에 의해 이미 재단되고 평가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환된다. 정흥섭이 『디지털 화석』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디지털 이미지의 순수성은 디지털 가상공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상의 언어로 풀어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디지털 공간에서 화석을 발견해 내듯 조심스럽고도 오랜 시간동안 디지털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맹인들의 입장에서 디지털 가상공간이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이듯이, 현실공간의 물질성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가상이미지의 참 의미는 쉽게 경험되지 않는 세계이다. 이제 디지털 가상세계의 화석을 찾기 위한 고고학적인 자세와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오류의 세계를 탐험 할 수 있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세계는 문을 열고자 하는 자에게 보이고 만져지기 때문이다.


백곤 / 모란미술관 학예사
 





참고작품
FINAL FANTASY7_installation_120x100x20cm_2005 
DIGITAL FOSSIL_C프린트_27.9×42cm_2009
DIGITAL FOSSIL_단채널 비디오_00:00:12_2009
DIGITAL FOSSIL_C프린트_31×42cm_2009
DIGITAL FOSSIL_C프린트_31×42cm_2009 
DIGITAL FOSSIL-FINAL FANTASY7_Book edition 1/2000_22×15×1.9cm_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