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ung-Sup Jung
이미지의 실현 / Donner corps aux images
정흥섭은 수 년간에 걸친 작업을 통해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이행 과정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특별히 그의 작업은 3차원 볼륨을 만들기 위한 모델로서 디지털 이미지가 선택됐을 때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넘어가는 경로의 문제가 얼마만큼 깊이 있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상 세계의 이미지로부터 만들어진 그의 3차원 볼륨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서 과연 어떤 존재 양식을 취하고 있는가 ? 또 이 이미지들은 현실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 정흥섭의 작업은 그 전반에 걸쳐 이미지, 볼륨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맺어질 수 있는 관계들을 다시 한번 살펴 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미지가 출력될 때, 가상과 현실 사이의 통로를 가장 처음으로 민감하게 경험하는 증인은 바로 종이이다 . 동시에 종이는 현실 세계에서 우리에게 이미지를 선보이는 첫번째 도구이기도 하다. 정흥섭은 컴퓨터 상에 나타난 특정 사물의 이미지(나사, 단추, 동물...)를 선택하는 것으로 작업의 문을 연다. 이어서 그 이미지를 출력하고 조각 조각 찢어서 찢긴 종이 조각으로 다시 볼륨을 만든다. 디지털 화면 속의 폭발로부터 떨어져 나온 ‘나사’(볼트)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단추’는 종이 낱장 두께의 수많은 단면으로 분할되어 출력된다. 또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태어나 컴퓨터 화면 상에서 가상의 볼륨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었던 감자는 실재 공간으로 옮겨져 ‘감자 무더기’로 쌓인다. 각각의 이미지는 민감하게 선택되는데, ‘양’의 경우처럼 상징적일 수도 있고 ‘단추’의 경우처럼 하찮음과 무의미함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어서 이미지는 작가의 손을 통해 분명한 3차원 볼륨으로 다시 태어난다.
정흥섭의 작업을 보는 관찰자로서 우리는 두 가지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화면 캡쳐된 이미지(인물 초상, 나사, 양...)와 다른 하나는 그 이미지로부터 만들어진 3차원 볼륨이다. 이 두 가지 앞에 선 관찰자는 가상 현실의 물질화에 의해 탄생된 공간, 가상도 아닌 현실도 아닌 그 둘 사이에 형태가 없이 떠도는 ‘사이 공간’에 초대된다. 정흥섭은 넘치는 이미지로 이미 꽉 찬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더하기 보다는, 현실과 가상이라는 이 두 세계의 ‘사이 공간’을 고민하고 있다. 즉, 작가는 현실 세계가 가상 세계에 빌려 준 잉여 공간을 활용하여 이 감춰진 ‘사이 공간’을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사이 공간’을 잘 나타내 주는 좋은 예가 양이라는 동물의 선택이다 : 양은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물인 동시에 종교적으로는 신비성을 가진 상징적인 동물이다. 이러한 양의 특성을 통해 작가는 ‘사이 공간’에 대한 고찰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작가 자신은 실체가 없었던 사물에 실체를 만들어 준 사람이 된다. 가상 세계에서는 모델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사물이 3차원 볼륨으로 재현될 수 있다. 끝없이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무한한 이미지 원천인 이 가상 세계에서 작가는 특정 이미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선택된 이미지를 현실 세계로 끌어온다. 작가의 손에 붙들리기 전에 이 이미지들의 유일한 존재 양식은 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번도 실체를 가져 볼 수 없었고, 또 실체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들을 현실 세계에 끌어와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도록 해 준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이들을 실재 공간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 원형을 브라운관 상에서 밖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이미지들에 물리적 존재감를 부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들을 시간의 세계로 또 물질의 세계-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화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연약하기만 한 물질로 구성된 현실-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정흥섭도 이미지의 문제를 다룰 때 현실에 충실한 재현이나 유사성 보다는 본질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에게 있어 이미지는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있고 이는 긴밀하게 맺어진 이미지-시간의 관계, 이미지-현실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이미지 자체에 깊이를 부여하는 것은 본질에 관한 고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근거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생각 자체에 갇혀 버릴 수 있는 커다란 위험을 무릎 쓰고 이미지 자체에 깊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개념을 낱낱이 펼쳐 보여주는 커다란 스펙트럼이 있다면 우리는 정흥섭의 작업이 반영하는 각 극단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이 때 그 스펙트럼 속에서 우리는 ‘구속하는 이미지’와 ‘해방시키는 이미지’를 대립시켜 볼 수 있다. 또 실제로 이 두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상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구속하는 이미지’는 오직 일차원적인 의미들만을 추구하며 또 다른 이미지를 갈망하도록 만드는데 반해 ‘해방시키는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이미지와 관찰자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며 적극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도록 해 준다. 전자는 양적인 풍요일 뿐인 거짓 풍요를 믿도록 조장하며 우리로 하여금 상대적인 가치들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막강한 주류에 속해 있다. 이에 반해 후자는 이미지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대어 있는데, Jean-Luc Nancy 가 말한 ‘본질 ‘<un fond>’에 기대어 있는 것이며 이 ‘본질’을 기반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개연성을 마련한다. 다시말해 한편에는 ‘단층적 이미지’<une image coup>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심층적 이미지’<une image profonde >가 있다; ‘관찰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이미지’<une image médusante> vs ‘판단하게 만드는 이미지’<une image critique>, 스스로 힘이 있다고 자처하는, 자기 안에 머무르는 이미지 vs 이미지로서는 더 약하지만 자격 면에서는 풍부한 가능성을 보이는 열린 이미지. 정흥섭의 모든 작업은 이미지의 강력한 비물질성을 폭로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업은 이미지와 그 이미지로부터 만들어진 3차원 볼륨 사이에 공존 관계를 현실 속에 구축한다. 이러한 이행을 실현함으로써 작가는 이미지와 관념 사이의 관계성에 관한 비판적 의문을 제기하며 그만의 고유한 위치를 확보한다.
셀린 플레슈 (Céline Flécheux)
/ 파리 7대학 미학과 교수 재직
/ 저서: “지평선, 대지 예술의 원근법 <L'horizon, des traités de perspective au Land Art>
2009년 11월
Explosion / 2009 / installation : paper sculpture / 700 x 810 x 500 cm
Digital fossil / 2009 / installation : paper sculpture / 21 x 29 x 7 cm
Potatoes / 2009 / installation : paper sculpture / 200 x 200 x 80 cm
Lamb / 2009 / digital print / 84 x 56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