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 DECALCOMANIE

2011. 6. 17. 10:092011/데칼코마니 / DECALCOMANIE

JUNG Heung-sup_정흥섭

데칼코마니_DECALCOMANIE/ 2011/ installation/ 가변크기_도로표지판/ 2011 태화강 국제 설치미술제/ JUNG Heungsup_정흥섭





‘데칼코마니’는 원래의 이미지와 반전된 이미지가 함께 만들어내는 우연의 효과를 보여주는 예술표현 기법이다. 실재하는 도로교통표지판을 촬영한 디지털 사진의 반전은 지극히 가상적인 행위이며 반전된 이미지 역시 가상이다. 이러한 가상이 실재 사물과 함께 반전된 사물로 만들어져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연의 공간을 연출한다. 


이 우연의 공간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상과 실재라는 관계의 오해 속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상은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던 관계에 연민을 느끼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착각과 연민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이제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는 가상에 집착한다. 그날의 지난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의 마지막에 언제나 내일을 예측하는 일기예보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에게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작품을 촬영했던 장소는 자신이 언젠가 한 번 방문해야 할 공간이 되며, 보다 극성스러운 이들에게는 성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상에 집착하는 대표적인 실재는 도시를 품은 공간이다. 그 어마어마한 물질적 규모와 무게도 피상적인 가상의 모습과 같이 평면적 도시의 이미지는 가볍다. 


도시와 도시는 고속도로라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비좁은 공간은 주목할 만한 속도를 가지고 있다. 서울과 울산이라는 물리적, 문화적 공간과 거리감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빠른 속도의 소통으로 극복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극복이 서로의 공간에서 다른 모양의 문화를 잉태해 낼 시간의 틈도 사라지게 하여 소통할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공허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도시를 품고 있던 서로 다른 공간들은 그들이 집착하는 '도시'라는 유사한 형식의 가상이 되어간다. 소통의 가공할 속도는 모든 도시공간에 초대량의 획일화된 피상적 문화를 양산해낸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들의 대량화된 획일화는 가벼워져가는 '데칼코마니'된 평면적 도시들을 은유한다.


고속도로의 가공할 속도를 위협하는 것은 도로 변 '야생동물출몰주의표지판'이다. 고속도로에 의해 양분된 광활한 타 공간들은 야생동물의 서식지이며 도시와 야생동물은 도로 위에서 충돌한다.





도로표지판과 지도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지시해주는 사물과 이미지는 온 도시와 마을 그리고 매체 속에 가득하다.   

그들은 문자와 기호, 이미지라는 가상으로서 현실의 자유로운 그림자였다. 무엇이든 불러주면 되었으니 말이다. 무의미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복제와 반복 그리고 편리함은 그들을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로 만들었다. 무뚝뚝해진 그들은 이제 우리를 이끈다. 성급한 이들은 우리를 구속한다고 까지 말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조금이라도 그림자가 움직이면 큰 불호령이 떨어질 곳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 우리의 편리한 입장에서 그들이 잘못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어쩌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인지도 모른다.